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라미님의 수술경험 후기 #4

복강경을 이용한 난소수술

인터넷에서 ‘내가 얼마나 운좋은 사람인지’ 체크해보는 리스트를 봤는데 그 목록에서 ‘입원, 수술, 골절 경험 없음’ 이런 내용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건강했고 수술, 입원 경험이 없던 나, 생각해보니 나 무척 운이 좋은 사람 아닐까?

“엄마. 우리 가족은 입원, 수술 이런거 잘 없었잖아. 되게 운 좋은 거 같다. 그치?” 이렇게 말했더니 엄마는 바로 내 등짝을 살짝 스매싱하면서 “그런 말 하면 안돼. 그러면 진짜로 아프게 될 수 있어.” 라는 미신적인 발언을 한 마디 남기셨다.

자랑이 아니라 팩트인걸. 그리고 아프면 아픈 거지, 자랑하면 아프게 된다니 무슨 말? 어쨌든 수술 한 번 안해본 건 좋은 일 아닌가 수술이나 입원은 안해봤어도 몸 건강한 게 최고인 걸 알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검진은 받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기 물혹이 좀 보이는데요. 크기가 점점 커져서.. 제거 수술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아니 의사양반, 아니 의사선생님 그게 무슨 말인가요. 수술? 제거 수술이요?? 양쪽 난소 물혹이 점점 커진다는 의사샘의 말씀 그제야 엄마의 말이 미신이 아니라 진짜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랑스러웠던 나의 NO 입원, NO 수술 기록이 이렇게 무너진다니

수술 후유증… 난소 물혹 수술 후기.. 난소 낭종 수술 아픈가요… 이런 검색 기록이 쌓이고 처음 수술 받을 생각에 걱정도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세상에 첫 수술 경험만큼 경험하고 싶지 않은 첫 만남이 또 없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한테 수술 경험 없는 건강한 신체를 자랑했다가 혼난 내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수술을 준비했던 것처럼…

어쩌면 지금도 며칠 내로 수술 날짜가 잡히고 난소 수술 후기, 난소 물혹 제거 수술 후기 등등을 검색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입원 - 수술 - 퇴원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볼까 한다.

입원날

2021년 12월 1일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달, 그 달의 첫 날에 난 입원을 했다. 첫 수술이라 무지 걱정했는데, 정말 웃긴 일이지만… 조금 설레기도 했다. 병원 자주 다니는 분들한테는 죄송스럽고 무지 철없는 생각이지만 뭔가 새로 태어나는,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사랑하는 마이 마덜과 11월 29일에 검사를 받고 다음날 음성결과가 나오자 입원을 했다.

드디어 병원에 입성
2층 입퇴원 수속실에 들러 입원 수속을 마치고 맞은 편 입원 생활 수속실로 방문했다. 키, 몸무게, 혈압, 체온을 측정하며 몸 상태를 간단히 조사한다. 분명 단식을 했는데도 왜 이 몸무게일까… 새해에는 온국민의 작심삼일인 다이어트를 해야할까 이런 생각을 잠깐 한 다음 배정받은 2동 행복관 4층으로 향했다.

간호사실에선 또 간호사 선생님이 맞이해주셨다. 절차를 잘 몰라서 바쁜 회사 학생 인턴 마냥 쭈뼛… 어색… 저 뭐해야 할까요? 이렇게 있었는데 혹시 이걸 읽고 가는 분이 있다면 당당하게 간호사 선생님을 찾길 바란다. 간호사실에서 코로나 음성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엄마가 상주보호자 등록을 하도록 안내해주셨다.

이후에 내가 가진 병력, 먹고 있는 약에 대해 조사가 이어졌다. 병력도 먹는 약도 없었기에 조사는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평생 수술 안 할 줄 알다가 하게 되는 뒤통수를 맞긴 했어도 역시 건강은 좋은 거다. 그 다음엔 이렇게 2장으로 이루어진 복강경 난소수술 안내문을 나눠주신다.

입원 2일 후 정도까지 주의사항만 안내문이 나와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는데 보통 3박 4일 정도 머문다고 한다. 코로나 확산으로 병상이 부족해서 조금 빠른 퇴원을 할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 정도 수술 핑계로는 천년만년 쉬는 것도 힘들겠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병원에 입실 준비된 부인과 원피스로 옷을 갈아있었다. 사복을 벗고 난 후에야 각종 검사에 정신없어 잊고 있던 “와 진짜 수술하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 수술 전에 예상치 못했던 첫 시련이 시작됐다.

자리에 기다리고 있자 이번엔 간호사 선생님이 제모 크림을 가져다 주신다. 왜… 요? 선생님? 비키니 안 입는데… 바디 프로필도 안 찍는데 왜요…? 같은 질문은 당연히 하지 않았지만, 순간 무척 당황했다.

복강경으로 수술 받기 때문에 복부와 회음부 위쪽 털을 제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냥 쌩으로 뽑거나 밀지 않고(?)
‘니크린’ 이라는 신비로운 만능 크림을 얻게 된다. 이 크림만 바르면 15분 정도 지나 제모가 된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또 방문해서 확인을 해주시는데 유일하게 덜 튼튼한 부분이 얼굴 가죽이었던 나로서는 수술 전 걱정보다, 수술 후 아픔 만큼이나 큰 시련이었다 ㅠㅠ 다음에 이런 수술을 받으면, 물론 한 번으로 족하지만 혹시라도 수술을 만든다면 꼭 제모를 미리 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

제모를 한 다음엔 항생제 반응 검사를 한다. 나한테 사용할 항생제가 몸에 맞는지 확인하는 검사인데, 약물을 주입하고 15분 정도 후 발적, 붓기 등 반응을 확인하러 오신다.

<항생제 반응 검사 모습>

이렇게 내 몸에 알 수 없는 단어를 쓱쓱 적어두신다. 아... 살이 불타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주사보다 더 아프긴 했지만 ㅠㅠ
그래도 역시 항생제 검사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그 후에는 파란 수술복 같은옷에 흰자켓을 입은 언니 가 주치의라고 소개하고, 내일 받을 수술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무려 배꼽 아래에 구멍을 뚫을 예정이라는데 ㄷㄷㄷㄷ 귀 뚫는 것도 겨우 뚫었던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해야지.. 물혹을 계속 키울 수도 없고 ㅠ
주치의 선생님은 수술동의서를, 다른 의사 선생님은 마취동의서, 무통주사동의서, 수혈동의서를 설명하고 사인을 받아가셨다. 이게 전부였던가?? 암튼 뭔가 많은 설명에 알아듣기도 하고 가우뚱하기도하고 꼭 수혈을 해야 하는 건 아니고...꼭 발생하는건 아니고 확률적으로 발생할수도 있고...?? 등등 아리송이지만 수술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미리 받아두는 거라고 한다. 겁이 덜컥 나기도 했지만...코로나 검사도 받고, 각종 검사에, 털까지 밀어버린(...) 이상 여기서 “어, 그런데 저 수술 안 받을래요” 이럴 수도 없으니 당연히 동의서에는 전부 거침없이 싸인했다.

다음에는 주사 잡는 시간! 수술 하게 될 때 굵은 주사바늘이 필요해서 보기만 해도 무서운 굵은 주사 잡기를 한다. 그래도 항생제 반응을 통과했다면 그나마 좀 나으니까… 너무 겁먹지 마시길 주사를 잡으면서 수술에 필요한 혈액형 검사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항생제 검사, 주사 잡기보다 더 힘든 두 번째 시련, 바로 관장 시간이다. 제모만큼이나 또 한 번의 부끄러움이었다 ㅠㅠ 수술 준비를 위해 꼭 대변을 2번 정도 봐야한다고 미리 설명해주시고, 간호사 선생님이 저녁 먹고 먹으라는 관장약을 먹었다. 내 대장이 눈치 좀 챙겨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 좋았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효과는 미비했고 결국 8시쯤 관장을 했다.

진짜 관장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이상한 느낌 ㅠㅠ 거친 음식을 못 먹는 애기들이 변비가 심해서 관장을 많이 한다던데,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카야 이모가 그냥 귀엽게 봐서 미안해… 어른도 힘들구나… 그렇게 관장을 하고 15분 정도 시간이 지나 대변을 보러갔다. (난 관장약 효과가 늦게 돌아서 새벽에 또 배가 꾸룩꾸룩하면서 2번 정도 화장실을 더 갈 수도 있다 갔다 ㅎㅎ… )

3번 정도 화장실을 갔다오니 자정부터 물 포함 금식이라고 설명해주시면서 수액을 달아주셨다. 이렇게 끝난 수술 전날 준비!...

그럼 지금까지 길고 긴 수술 전까지 여정을 정리해보겠다.

이렇게 끝이 난다. 글로 쓰니까 무지 장황하고 복잡한데, 하나하나 겪다보면 안내도 친절하게 하시고 마치 퀘스트 깨는 기분이다.

수술 당일

마침내 수술 당일.
여기서 또 한 번 고난을 겪었는데 그냥 금식도 아니고 ‘물 포함 금식’... 주변에서 식사하는 모습이나 냄새 맡는 것만 봐도 돌아버릴 지경이다 ㅠ 수술 한다고 금식해야 한다니 말이 됨? 맛있는 녀석들도 한입만 찬스는 있는데… 아까 키 몸무게 검사할 때 다이어트 결심은 무슨 다이어트 결심이냐 퇴원만 해봐라.. 햄버거 파스타 마라탕 떡볶이 갈비 먹고 베라로 입가심해야지….

절망적이게도 수술이 오후에 잡혔고, 앞에 수술 환자가 많아 오후 3시 이후에나 수술하러 갈 수 있었다 ㅠ 입원 날에는 이것저것 수속 밟느라 바빴지만 수술 당일은 할 일이 없다. 핸드폰하고 누워있고 뒹굴뒹굴.. 밥도 굶었는데 바쁘기까지 하면 진짜 다 엎어버리고 싶었을듯

이쯤 되면 수술이 두렵다는 생각이 아니라, 빨리 해치우고 싶어진다. 혹시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고 이렇게 굶기는 건 아닐까? (아니겠지) 마침내 선생님이 다급하게 달려와 수술장으로 간다는 희소식을 전해주셨다. 종교도 안 믿는데 귀에서 막 샹투스 울리고 할렐루야 울리고.. 속옷을 탈의하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라고 해서 갔다오고 수술장으로 출발했다.

전신마취로 수술을 받는데, 혹시 예전에 ‘선천적 얼간이들’ 이라는 웹툰 기억하시는지? 진짜 그거랑 똑같다. 10… 9… 그래 이 수술만 마치면 붕어빵 먹어야지.. 붕어빵 트럭까지 먹어야지 8… 이게 아니라 십… 굵. 기억이 여기서 끊어진다.

그냥 자다깼더니 회복실이었다. 수술 시간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었고, 회복실에 있다가 병동으로 올라갔다. 복강경 수술이지만 꽤 아팠다 ㅠㅠ 병동 올라오자마자 죽는 소리를 내서 간호사 선생님이 바로 진통제를 추가로 주셨다. 무통주사 설명을 받고 볼펜 꼭지 같은 파란부분을 엄청 눌렀다… 내가 엄살이 좀 심한 걸 수도 있지만, 아픈데 안 누를 이유 없지 않을까. 다행히 무통주사 부작용은 없는데, 이렇게 너무 누르면 토하거나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진정이 좀 되고 나서, 간호사 선생님이 2시간만 금식하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왜요? 수술 끝났는데 회복되도록 든든한 국밥 먹으면 안돼요? 같은 말을 할 여유 따윈 없다. 물이 어디냐… 오늘은 물, 내일 아침부터 미음, 점심은 죽, 저녁은 밥이 나온다고 한다. 아침엔 미음, 점심은 죽, 저녁엔 밥을 먹는 동물은? 복강경 수술을 마친 환자입니다. 밑에는 소변줄을 달았는데, 오후 늦게 수술이 끝났기 때문에 내일 오후쯤 제거해준다고 하셨다. 불편하긴 한데 아프고 정신없고 배고파서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전신 마취를 한 날에는 불면증이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심호흡을 여러번 하면 잠이 온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내일 피검사 괜찮고 소변 잘보면 퇴원이라는 설명도 받았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간호사선생님들이 방문하셔서 통증 정도와 혈압을 체크해 가셨고 큰 문제없이 잠이 들었다.

<무통주사>

수술 후 1일째/퇴원일

어제는 이랬었다. 병원은 병원이라 답답한데 괜찮을까… 아프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어질어질한데 나 과연 퇴원이 될까? 일주일은 더 쉬어야 하지 않음? 근데 아침에 미음 먹고 있어보니 퇴원… 괜찮을지도?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병원은 별로 오래 있을 곳도 아니고. 보통은 하루 더 입원 하는데 요즘은 수술 경과가 좋아서 이렇게 수술 다음날 퇴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제 수술이 늦게 끝난 터라 점심까지 먹고 1시경 퇴원하기로 했다.

원래는 소변줄도 오후에 제거 한다고 했는데 퇴원일이라서 아침에 일찍 제거 해주셨고, 4시간 뒤에 소변보면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2시간 뒤에 요의를 느껴서 소변을 보았고, 피검사 수치도 좋아서 점심 먹고 퇴원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수술부위 소독해주시면서 방수밴드로 바꿔주셨고, 외래 오기 전까지 별다른 소독 필요 없고, 간단한 물샤워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 수술 7-10일 사이에 외래로 내원하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복잡했던 입원 수속 절차에 비해 수술부터 퇴원까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글로는 이렇게 간단한데 금식의 고통.. 수술이 끝날 때 고통… 어지러움..까지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겁 주려는 건 아니고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워낙 신속하고 친절하게 대처해주셔서 그래도 계속 아프진 않다.

복강경 수술을 처음 받아 본 소감은 한 마디로 ‘아프고 힘들지만 하늘이 무너질 일은 아니다’ 그리고 처음 가면 좀 ‘복잡하다.’ 수술 하느라 긴장도 되는데, 혼란스럽기까지 하면 얼마나 머리 아프고 배가 고플까. 가뜩이나 금식해야 하는데... 그래서 게임 공략 가이드 남기듯이 후기를 한 번 써봤다. 이 후기가 꼭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마친다. 다시 한 번 친절한 NPC같은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사랑하는 보호자 엄마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고질병, 빨리빨리 병 때문에 글을 읽긴 읽었지만 기억에 덜 남는 분들을 위해 주의사항이나 꿀팁만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면

1. 입원일 기준 3일 이내 코로나 검사 필요. 단, 하루~이틀 전에 검사 받는 것을 추천.
(입원이 늦어지거나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는 불상사 방지)

2. 입원기간 상주할 수 있는 보호자는 단 한 명! 보호자도 코로나 검사 결과 필수. 한번 상주 등록하면 잠깐 외출은 가능하지만 외박은 NO 안돼요.

3. 제모 크림을 주실 예정이니... 확인받기 민망한 분들은 미리 제모하고 오기 ^^...